꿈에 대한 고찰 : 융과 프로이드와 스베덴보리


1.꿈에 대한 정의

 

“꿈은 자기 자신과의 대화이다.

정신의 의식층과 무의식층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상징과 이미지들 사이의 대화가 바로 꿈이다.”

“진리는 벌거벗고 세상속으로 오지 않고 유형(types)과 이미지(images)로 왔다.

사람은 다른 방법으로는 진리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신랑은 이미지를 거쳐 진리속으로 들어가야만 한다.”(성 빌립보의 복음)

프로이트  “꿈은 원망 충족이다“. 
소원성취적이다. 고로 인과적이다.

칼융  “꿈은 보상 작용이다.” 
의식상의 극단적 태도에 대하여 무의식은 반동하여 균형을 맞추려 한다.

꿈은 영화와 최면과 영계와 같다.


1) 꿈은 영화와 같다.

꿈속의 자아는 주연배우와 조연과 엑스트라와 관객으로 나온다.
꿈은 한 장면, 한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꿈속의 자아는 주어진 그 상황에 맞는 연기를 한다.
수영을 못하는데 수영을 하고, 외국어를 못하는데 외국어를 하고, 친구가 아닌데 친구처럼 대하고

대통령과 만날 수 없는데 만나서 대화하고 등등.....

주연과 조연과 엑스타라는 꿈의 상황에 모두 참여한 것을 말한다.
다만 비중의 차이만 있을뿐이다.

관객이란 관찰자로서 꿈의 상황과 사건을 바라보는 것이다.
후자는 객관적인 상태를 전자는 주관적인 상태가 된다.

꿈은 절대로 무의미한 생물학적 본성에 근원을 둔 활동이 아니고,

생리적 반응에 속한 것도 아닌 의도적이고 목적적으로 주어지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의미있는 현상이다.

영화와 같이 주제와 목적이 뚜렷다.
물론 그렇지 않아 보이는 꿈들도 있다.

일명 개꿈이라고 하는데 영적으로 논하면 이는 악령으로부터 오는 것으로 혼란스럽지만 이에도 의미는 있다.

꿈은 영화와 같다는 명제를 수용한다면 꿈을 만드는 연출가 즉 감독을 시인해야 한다.
꿈의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는 근원적으로는 하느님이며 실제적으로는 수호령/수호천사들이다.

꿈은 절대로 자기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꿈은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것이다.
감독과 작가가 주체의 무의식이나 집단 무의식이 아니라고 하는 주장에 대해서는

 영계나 영적존재나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수용하기가 어려운 점이 될 것이다.

이것은 자유이다. 중요한 것은 꿈은 의미 없는 개꿈이 아니라 
주제와 메시지를 담은 의미 있는 것이라는 통찰이고 믿음이다.


2) 꿈은 최면과 같다.


꿈속의 자아는 최면자가 피최면자의 암시적 언어에 복종적 행동을 하듯이

 자기도 모르게 영화속의 배우처럼 조종사로, 회사원으로, 선생으로 등등으로 연기를 한다는 것이다.

최면자는 암시자에 의해서 나무토막이 되기도 하고, 어린아이가 되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하는 것과 같이

꿈속의 자아는 감독이 주문한 대로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아무런 자각도 없이 그 캐릭터에 맞게 연기를 한다는 것이다.


 이 통찰에서 발견할수 있는 영적비의가 있다.

사람은 타자를 조정할수 있다는 것이다. 
심리 조정술(조정, 선동, 조작), 인간 조정술(대리자/분신)


3) 꿈은 영계와 같다.

영계에는 시공간과 물질이 없다. 그것들의 외현/외관만 있을뿐이다.
마찬가지로 꿈도 시공간과 물질이 없고 그것들의 가상만 있을뿐이다.

매트릭스 세계와 같디. 네오가 훈련했던 그곳과 같이 말이다.
가상들이지만 실재적으로 꿈속의 자아는 느낀다는 것이다.
현실과 동일하게 아니 그 보다 더 강하게 ....

영계에서는 불가능한 것이 없다. 마찬가지로 꿈의 세계도 그러하다.

꿈속에서 외국어 방언이나 독심술이나 상념이 전파되는 것이나 심리조정이나 등등의 것들을 알게 모르게 체험을 하고 있다.

즉 초능력적 현상들이 자유자재라는 것이다.

 꿈속의 자아는 이 공간에서 저 공간으로 순식간에 이동한다.

그것은 영계에서 그러하듯이 夢(몽)계도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2. 꿈을 보는 관점 : 목적론적인 시각과 인과론적인 시각


꿈의 관점을 보면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 집니다. 
목적론적인 시각과 인과론적인 시각 입니다. 

목적론적이 칼융과 스베덴 보리 (대부분)의 관점이고, 
인과론이 프로이트와 일반 심리학의 관점 입니다. 

1) 인과론적 시각 : 프로이드와  기독교적 구원론

 

[인과론적 시각]은 사람의 현재상태가 과거의 원인을 두고 일어난 것이다라는 교리에 근거를 합니다. 

이 시각의 단점은 인과율과 같이 결정론적인 관점을 가지게 하고 과거로의 회귀를 하게 한다는 것.

장점은 인과율에 기반한 도덕성을 고양시킨다는 것과

 과거의 행위에 집중하게 하므로서 반성을 할수 있게 한다는 것 입니다. 


참조) 이 인과론적 시각은 기독교 교리의 근간을 이루는 관점 입니다. 
실낙원에 대한 이해로부터 구원에 관한 교리를 세웠기 때문 입니다. 

기독교 구원론과 그 밖의 성경을 기반으로 한 모든 종교들은

실낙원으로부터 구원에 관한 자신들 만의 교리를 만들었습니다.

 

2) 목적론적 시각 : 융과 스베덴보리

[목적론적 시각]은 모든 현상을 목적론적으로 보는 것을 말 합니다. 

종교적으로는 절대 선의 신관에 근거하여 제 현상에 선한 의미를 부여 하는 것을 말 합니다. 
꿈해석과 꿈에 대한 시각에서는 물론 위와같이 목적과 주제를 부여하여 의미를 갖게 하는 것을 말 합니다. 

참조) 이것은 제 현상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고 미래 지향적인 마음을 지니게  합니다.

미래에 이루어야할 완성에 촛점을 맞추고 뜻과 생각을 이상에 독려 하도록 사람을 지도 합니다. 

이것은 목적, 어떤 의미로, 뜻으로 일어난 일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하므로서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도록, 헤아리도록 만듭니다.

즉 피조물로 하여금 주님에게 다가가게 만든다는 것 입니다. 

피조물로 하여금 신에 대한 명상을 하게 만드는 것, 
따라서 이 시각은 매우 종교적이요 신성한 고찰이 됩니다. 

인과론적 시각은 과거의 그 일때문에 오늘날 내가 이와같은 苦의 상태에 놓이게 된 것이다 
라는 생각을 불러 일으키므로서 인생의 제 현상에 대하여 부정적 상념을 갖게 만듭니다. 

반면 목적론적 시각은 모든 것이 신의 뜻에 의하여 일어난 일로서 결과적으로 선으로

 만들 것이다 라고 하므로서 긍정적 상념을 사람으로 하여금 갖게 만듭니다. 

목적론적 시각은 기독교의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교리와

불교의 대승기신론의 여래장 교리와 상통 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교의 여래장이란 모든 현상에  진리의 씨앗이 들어 있다는 것을  말 합니다.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