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개념의 재구성(1)


마음 개념의 재구성과 심리학 외연의 확장:

인지과학적 접근과 심리학의 미래

 

이정모

(성균관대 심리학과/ 인지과학 협동과정)

          

 

"나의 의미는 나의 밖에 있다.(메를로-퐁티, 1945)"

  I부. 서론 

인간의 지적 호기심은 많은 것을 이루어 냈다. 다른 동물들과 차별화된 지적 능력을 지닐 뿐만 아니라 수많은 도구 등을 만들어 내었고,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왔다. 심리학도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에 이러한 인류 진화 역사에서 특히 중요한 분기점은, 일반 자연 현상만을 호기심의 대상으로, 관찰과 분석과 설명과 이해의 대상으로 삼던 인류가 그 단계를 넘어서서, 인간 자신을 지적 호기심, 관심의 대상으로 삼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어린아이들이 자라나는 것을 보자면, 아이들은 처음에는 자기 자신을 객관화하지 못하다가 발달이 진행되면서 점차 자신을 객관화 하는 단계를 거친다. 마찬가지로 인류도 진화 도상에서 같은 단계를 거쳐 왔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인간 자신을 대상화 하는 첫 단계에서는 신체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대상화하였다고 볼 수 있다. 오감을 사용하여 감각하고 지각할 수 있는 물리적 존재로서의 나와 다른 사람들을 지적 관심의 대상으로 삼게 된 것이다. 신체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대상화하던 단계를 넘어서서, 마음을 지닌 심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대상화한 것은 아마도 그 이후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마음을 지닌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되면서, 마음의 작용, 마음의 본질 등에 대하여 설명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전개되어 왔다. 심리학이 배태된 서양 중심으로 본다면, 고대에서 희랍시대를 거쳐서, 중세, 근대,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마음의 본질, 마음의 작동 특성에 대하여 다양한 관점이 제기되어 왔고, 그러한 관점들은 단순히 인간 이해, 인간 마음의 이해를 넘어서서 각 시대의 인간의 문화, 사회의 특성을 결정하기도 하고 또 그 문화, 사회의 특성에 의해 제약과 영향을 받는 형태로 마음의 개념, 관점이 변화되기도 하였다.

19세기 후반에 심리학을 철학으로부터 독립된 경험과학으로 출발시킨 W. Wundt와 당시의 심리학자들은 유럽대륙에 팽배하여 있던 경험주의, 실험주의적 생각과 실제 적용의 분위기에 영향을 받고, 특히 당시의 실험생리학, 실험물리학에 영향을 받아서, 그 학문들이 연구 대상을 관찰, 분석, 설명하는 방식인 실험실 실험주의를 도입하여, 전통적으로 철학에서 내려오던 감각경험과 의식경험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들에 적용하였던 것이다. 과학일반이나 심리학의 역사적 흐름을 본다면 한 세대의 생각은 비록 이전 세대의 생각의 기반 위에서 가능하였고 이전의 여러 세대들에서 생각되어져 온 개념적 틀의 큰 울을 크게 벗어나지는 못하지만 새로운 강조점이나 새로운 관점에서 재구성된 개념을 제시하여 왔다. 심리학을 독립적 과학으로 형성시킨 분트나, 그 이후의 여러 심리학 사조들에서 인간의 마음에 대하여 취하여 온 입장을 본다면, 선대들의 사고에 상당히 영향을 받기는 하였지만 계속된 재구성의 시도가 이루어져왔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심리학, 그리고 미래의 심리학도 이러한 끊임없는 재구성의 노력이 진행될 것이고 그에 의하여 심리학이라는 학문은 계속 가다듬어져 갈 것이다. 그렇기에 창립 60주년을 맞이한 한국심리학의 과거와 오늘을 되새겨 보며 미래에 대한 창조적 변화 지향적 생각을 내어놓기 위하여는, 심리학의 주제인 마음에 대하여 오늘 날의 심리학이 지니고 있는 개념, 그리고 지향하여야 할 개념에 대하여 통념적으로 생각하는 관점들을 다시 음미하여 보고 재구성을 시도하여 그를 통하여 우리가 현재 지니고 있는 개념체계보다 나은 심리학으로의 구성을 시도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심리학의 주제인 마음과 관련하여 우리가 현재까지 지녀왔던 통념적 관점은 무엇이며, 또 현재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생각, 개념적 재구성의 움직임은 어떤 것이며, 이러한 개념적 재구성이 심리학의 미래에 대하여, 이론적, 학문적으로, 그리고 심리학의 현실적 펼침이라는 응용적 측면에서, 무엇을 시사하는 것일까? 이 글은 이러한 물음을 갖고 잠시 멈추어 되돌아보자는 의미에서 쓰여지는 것이다. 그러나 서구를 넘어선 동양에서의 마음 개념, 심학의 계속된 발전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미래로 투사한다든가, 서구에서의 20세기 이전의 생각들에 대한 광범한 체계적, 비판적 분석은 발표자의 지식의 한계와 지면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이러한 두 측면에 대한 되돌아봄은 생략하고, 서구의 20세기 중반이후, 즉 인지주의의 대두 이후 중심으로 마음 개념의 변화를 조명하고 그 의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마음 개념은 인간이 인간 자신에 대하여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래, 심리학이 형성되기 이전에 철학등의 인접학문에서, 심리학이 형성된 이후 심리학 내에서 또는 심리학 밖에서 계속하여 변천하여 왔다. II-1부에서는 심리학과 인지과학에서 지녀온 마음에 대한 고전적, 전통적 개념 틀을 먼저 살펴보겠다. II-2부에서는 20세기 후반의 인지과학 중심의 마음 개념의 재구성과, 20세기 말에서 21세기 초엽의 현재 철학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마음 개념의 재구성 움직임을 다루고, III부에서는 마음 개념 재구성 시도 이전에 이루어진 심리학의 외연의 확장과, 마음 개념재구성이 시사하는 심리학 외연의 확장을, IV부에서는 이러한 논의들의 종합을 다루도록 하겠다.

 

II부. 마음개념의 재구성  

II.1. 고전적 마음 개념: 20세기 중반까지의 심리학과 인지과학 

호머의 일리어드 오딧세이에서와 같이 ‘숨’의 개념으로서의 시작되었다고 하는 서구의 '마음, 개념은 희랍의 여러 학자들과 중세의 기독교 및 그 이후의 철학자들, 그리고 이슬람의 이브센나 등의 자연과학자들의 체계적 생각에 의하여 가다듬어져 왔다. 이런 가다듬음의 역사에서 영혼과 마음과 몸의 관계를 설정하는 문제와, 마음의 기능적 구조를 분할하는 문제에 초점이 주어졌다고 할 수 있다. 몸과 마음의 관계에 대하여는 아리스토텔레스나 Alcmeon 등의 소수를 제외하고는 마음을 몸과 독립적인 그러한 실체로 개념화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추세는 Augustine, Aquinas 등의 기독교 전통을 통해서 17세기까지 이어졌고, 근대 학문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데카르트에게서도 이러한 이원론적 틀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이러한 선대의 사조의 영향을 받은 데카르트는 인간의 신체를 동물과 연속선 상에 있는 하나의 자동기계로 개념화하며, 마음과 몸을 이원론적으로 구분하는 심리학적 체계를 제시하였다. 그의 선대 학자들과 맥을 같이하는 Descartes의 이원론적 관점에서는 마음과 몸은 완연히 분리되어 개념화되었다, 데카르트에 의하면 마음은 사고하는 실체(res cogitans)이며 몸은 공간에서 기하학적으로 규정될 수 있는 외연(extension)을 지닌 실체(res extensa)이다. 또한 몸은 무한히 쪼갤 수 있으나, 마음은 그 다양한 능력, 기능과 심적 작용에도 불구하고 분할 불가한 단일의 통일적 실체이었다.

이후 17세기와 18세기의 학자들은 철학 내에서 인간의 영혼과 마음의 문제를 제기함에 있어, 영혼의 개념을 버리고 마음의 개념을 문제 삼으며 심적 현상의 이해와 설명에 경험적이고 기계적인 체계화를 시도하였다. 이는 심리현상의 연구에 기계적, 요소주의적, 연합적, 유물론적,

생리적 입장이 강조된 경험주의적 접근 방법을 가져왔다.

마음(psyche)과 물질(physio)의 관계를 수리적이고 경험과학적인 정신(심리)물리학의 틀로(psychophysics) 구성하려 한 Fechner의 개념화 과정을 바탕으로, 이후 19세기 후반에 심리학을 경험과학으로 출발시킨 빌헬름 분트는 마음의 개념을 전개함에 있어서 감각과 의식, 마음과 문화의 관계에 초점을 두었다고 할 수 있고, 그 후, 윌리엄 제임스는 마음, 의식, 환경의 관계에 초점을 두었고, 20세기 초반의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마음 개념을 배제한 행동에 초점을 두었다. 마음을 심리학에서 축출하고 행동만 관찰하고 기술하자는 행동주의 심리학에 반발하며 대두한 인지주의는 인간의 마음을 정보처리 시스템으로 개념화하였다. 인지주의는 하나의 개념틀로 머물러 있지 않고 계속 마음에 대한 관점을 수정하여 왔다. 인지주의가 출발한 이래 40 여 년이 경과한 지금까지의 인지주의의 변화 단계를 요약하여 본다면 다음과 같은 4단계를 거쳐왔다고 할 수 있다(이정모, 2001).

제 1단계는 심리학에서 마음을 제거하였던 행동주의의 반(反)심성주의로부터 탈피하여, 디지털 컴퓨터 유추에 바탕한 물리적기호(상징)체계(physical symbol system) 중심의 정보처리 접근의 인지주의를 형성한 것이었다. 제 2단계는 <컴퓨터 은유> 중심의 이러한 고전적 정보처리 접근에 바탕한 인지과학의 이론적 개념화의 한계를, <뇌 은유>의 신경망 연결주의 접근에 의하여 상징이하체계의 계산주의를 통해 극복하려 한 것이었다. 제 3단계는 연결주의 움직임의 영향과 인지신경과학의 연구기법의 급격한 발전에 의해 이루어진 뇌의 재발견을 통해, 마음에 대한 접근을 신경과학의 기초 위에 놓으려는 움직임이었다. 제 4의 단계는, 1980년대 후반부터 그 영향이 드러나기 시작한 사회문화적 접근에 의한 변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입장은 인간의 마음이 사회환경에 적응하는 순간 순간적 상호작용 행위 활동 상에서 비로소 존재하게 되는, 즉 문화, 역사, 사회의 맥락에 의해 구성되고 결정되는 그러한 마음이며, 인지임을 강조하는 접근이다.

<고전적 인지주의에서의 마음의 개념>. 195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내려온 고전적, 전통적 인지주의의 기본 틀은 데카르트의 존재론과 인식론에 기초한 이원론적 마음 관이라고 할 수 있다. 데카르트의 이원론에서는 마음과 몸은 별개의 실체이며, 마음과 외적 환경의 대상이 주체와 객체로 이분화되고, 마음이 외적 자연 대상에 대하여 있는 대로 반영하는 충실한 거울이며, 마음의 내용과 작용이 환경과는 비교적 독립적으로 인간의 머리속이라는 하나의 무대(theater)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며(“Mind as a theatre in the head”), 이러한 마음은 그 내용이 상징표상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 작용은 정보처리 과정으로 이루어진 그러한 정보처리 체계라는 입장이었다. 이 입장은 계산주의, 표상주의라고 불렸다. 이 입장을 단순화하여 표현하자면, 마음과 몸이, 그리고 이성과 정서가 분리되어 있고 마음과 행위가 이원화되며,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마음이라는 것이 부각되지 않고, 인간 내적 작동으로 충족한 그러한 심적 체계의 관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바로 그러한 연관에서 마음의 생물적 기반인 뇌의 작용과, 마음이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실시간적으로 존재하게되는 측면이 소홀히 된 그러한 입장이었다.

1980년대 초에 등장한 연결주의나, 그 이후에 등장하여 현재 과학계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인지신경과학은 물질로의 환원주의적, 일원론적인 입장에서 뇌를 강조하기는 하였지만, 근본적으로는 현상을 경험하는 주체와 그 대상인 객체를 이분법적으로 보는 데카르트의 관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그러한 관점 내에서 뇌라는 그릇 속의 마음, 또는 마음은 곧 뇌의 신경적 상태이다라는 개념 틀에서 진행되어 온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여러 심적 기능에 관한 인지과학적, 신경과학적 연구들은 환경과 별개의 실체로서 작용하는 뇌와, 뇌의 신경적 상태로서의 마음의 개념의 타당성에 대하여 그 개념적 기초를 엄밀히 체계적 분석을 하지 않은 채 진행되어 온 것이다.

 

II.2. 마음 개념의 재구성 시도: 20세기 후반의 인지과학적 움직임

 

전통적 인지주의가 1980년대 이후 마음에 대한 접근에 있어서 거쳐온 중요한 개념적 틀의 변화를 두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 흐름은 다중적구현(multiple realization) 틀에서 뇌를 경시하고 추구되었던 인지과학으로부터 마음의 물리적 구현 기관인 신체, 좁게 말하여 마음의 물리적 바탕인 “<뇌>의 되찾음”이라는 변화이었다. 다음으로는 그러한 마음과 뇌가 현실적으로 체화되어(embodied) 있고, 또 영향을 받는 바탕인 물리적, 사회적, 문화적, 진화 역사적 <환경>의 되찾음이라는 변화이다. 전자는 인지신경심리학, 인지신경과학의 떠오름과 함께 이루어졌고, 후자는 인문사회과학적 영향의 유입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Bechtel, Abrahamson, & Graham(1998)은 이 둘을 인지주의가 뇌 기반으로의 <아래로의 끌음downwards pull>적 변화와, 문화적, 사회적, 진화 역사적 환경에 심어져서 환경과 함께 작동하는 실체로서의 마음으로 개념화하고 설명하는 <밖으로의 끌음outwards-pull> 적 변화를 겪은 것이라고 표현하였다. 이 두 변화 흐름은 단순히 뇌 대 환경이라는 차원을 넘어서 존재론적 문제가 걸린 차이를 지니고 있다. 전자는 데카르트의 존재론 내에서의 전개이고 후자는 데카르트의 존재론 틀을 넘어서려는 움직임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존재론의 문제에 대하여는 후에 다시 언급하겠다

 

2.2.1. 아래로의 끌음

 

심리학과 인지과학에서 ‘뇌의 되찾음’으로 명명할 수 있는 ‘아래로의 끌음’에의 변화는 1980년대 전반의 신경망 모델을 강조하는 연결주의의 떠오름과, 뇌영상기법의 발전을 기반으로 하여 1990년대 초의 인지신경과학의 형성에서 뚜렷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인지신경과학적 접근의 대두는 전통적 인지주의가 신체를 무시한 채, 뇌의 중요성을 경시한 채, 추상적인 표상체계로 마음을 개념화하였던 데카르트적 관점에, 몸의 부분인 뇌라는 물리적 구체성을 되찾아 준 것이다. 이전의 전통적 인지심리학에서는 인지과정이나 표상체계에 대한 개념, 이론, 가설적 예언 등은 인지실험실 내에서의 인지과정 실험에 의해 그 타당성을 검증 받고 세련화되었다. 그러나 인지신경심리학적 접근이 도입되고 확산되면서 하위 인지구조와 단계적 과정을 제시한 인지심리이론들 특히, 언어, 기억, 주의 등에 관한 인지이론들, 개념들은 그 이론적 구성개념의 타당성과 예언의 타당성이 신경생리학적, 신경생물학적 연구들에 의해 검증되고, 그 결과로 재구성되고 있다. 마음의 과정과 구조에 대한 어떤 아이디어가 있으면 이제는 최종 확인과 검증을 인지신경실험을 통해 확인하는 절차가 추가되거나 그것으로 대치되고 있는 것이다. 심리학이 신경적 설명에 탄탄히 터를 잡고 있는 것이다.

 

2.2.2. 밖으로의 끌음(Outwards-Pulls)

 

다른 한 변화는 인간의 마음, 인지의 본질에 대한 사회-문화적, 진화생물학 이론적 재구성의 변화이다. 1980년대 후반 이래로 생물학, 특히 진화생물학, 사회생물학의 이론적 틀이 심리학에 도입되고, 서유럽의 사회과학적, 인문학적 사조의 유입으로, 인지심리학에서도 마음과 인지의 진화 역사적 결정인의 측면, 사회 문화적 결정 영향의 측면, 활동과 행위로서의 마음, 환경과 분리될 수 없는 구조로서의 마음의 개념의 중요성이 재인식되어, 마음의 개념적 기초를 변화시키고 있다. 일찍이 유럽 대륙의 철학이나 사회과학이론을 부분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던 사회심리학, 발달심리학은 마음이 사회적 산물이며, 사회적 요인들에 의해 결정됨을 주장하였는데, 이러한 주장들이 인지과학에 삼투되고, 이에 마음의 활동성 이론, 진화심리학이론 등의 영향이 가하여지면서, 뇌라는 그릇 속에 독립된 표상적 정보처리체계로서 개념화했던 마음에 대한 종래의 이론적 틀을 수정하여, 문화적, 사회적, 진화 역사적 환경에 심어져서 환경과 함께 작동하는 실체로서의 마음으로 개념화하고 설명하는 접근을 취하게 되었다.

이러한 새 움직임들은 하나로 결집되지 못한 산만한 움직임들로 이루어져 왔다. 이러한 움직임은 시초에는 철학자 J. Searle(1992)의 인지과학 비판을 비롯하여, 언어학자 Lakoff(1987)의 은유와 스키마 개념, Varela 등(1991)의 인지생물학 및 ‘embodied mind’ 개념, R. Harr?와 Gillet(1994) 등의 담화적 접근, Clancy(1993) 등의 상황인지 접근, Vygotsky의 이론틀에 기초하는 매개된 행위(mediated cognition) 접근 및 Wertsch(1998)의 행위적 접근 등의 사회인지적 입장에 기초하여 출발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을 한마디로 요약하여 표현하자면 그 동안의 인지과학을 지배해온 데카르트적 존재론의 틀을 벗어나려는 그러한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the third kind of cognitive science", “embodied-embedded cognitive science" 라고도 불리우는 이 움직임의 요점은 마음이 뇌의 신경적 상태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뇌의 신경적 상태, 비신경적 신체, 환경 등의 전체 상에서 이루어지는 실시간적 활동(activity)으로 개념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데카르트적 심신이원론이나, 생물적 뇌가 부가하는 제약적 속성을 무시한 채 인간의 마음을 정보처리체계로 개념화한 고전적 인지주의나, 그리고 생물적 뇌의 속성이 인지와 심적 경험의 속성을 특징지으며 모든 심적현상은 생물적, 신경적 상태와 과정으로서 설명할 수 있다는 환원주의적 유물론에 반발하는 것이다. 뇌의 생물적 특성을 무시한 정보처리적 표상주의이건, ‘뇌 = 마음’의 심신동일론이건, 마음의 본질과 특성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음을 뇌 내부의 신경적 상태만으로 환원하는 것은 역동적인 마음에 대한 부족한 개념화이며, 뇌, 신체, 그리고 환경 세상이 연결된 집합체 상의 현상으로 개념화하여야 한다는 주장이다(Mental phenomena emerge not merely from brain activities, but from an interacting nexus of brain, body, and world.). 심리학의 마음 개념과 이론을 이와 같이 밖으로 이끌어 낸 몇 개의 주요 흐름이 있었다. 그 흐름들에 대하여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생태학적 접근>: 1970년대 및 1980년대에서 기성 인지주의 심리학의 관점에 대한 강력한 대안관점을 제기하였던 생태지각심리학자 J. J. Gibson(1979)에 의하면, 유기체와 환경을 이원론적으로 구분 지을 수 없다. 따라서 심리학은 인간 마음 내의 표상, 계산 등의 연구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유기체가 살아 움직이고 또 상호 작용하는 환경, 즉 자극세계의 생태적 본질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심리학이 해야 할 일이란 자극들의 변화 속에 내재하는 특성(invariant properties)을 탐지하는 것이다. 자극은 유기체에게 외부에서 부과되는 것이 아니라, 유기체의 행위에 의해 비로소 산출되고 획득되는 것이다. 따라서 마음이란 수동적으로 외부자극을 수용하과 낱개 정보를 표상으로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유기체가 환경으로 무언가 활동을 하여, 그 결과에 따라 심적 경험 내용이 획득되는 것이다. 외부 자극에서 의미를 추출하는 것은 환경에의 유기체의 <행위>이다.

<동역학 체계적 접근>: Kelso(1995) 등은 기존의 인지주의 전통이 심적 상태를 어느 시점에 고정되어 있는 것으로 쪼개어 나누어 이론을 세워 온 것에 反하여, 심적 상태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가를 연구하는 것이 인지과학과 심리학 이론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동역학적 체계의 활동으로서의 심적 활동을 강조하는 이 입장에서는 마음의 내용인 내적 표상의 전제를 불필요한 것으로 본다. 심적 활동이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 밖의 환경과 분리될 수 없이 환경에 체화된(embodied) 마음이 환경과의 상호작용 실(實)시점에서 비로소, 그리고 상황 특수적으로, 환경에서 주어진 단서 구조들과의 상호작용에서 일어나는 비표상적 역동체계적 활동이라고 본다.

<발견법-편향 연구>: 데카르트의 인식론에 바탕하여 마음을 논리적 규칙이 지배하는 합리적 정보처리체로 간주했던 전통적 인지주의의 관점을 수정하게 한 다른 한 인지심리학적 연구 흐름이 있다. 인간의 각종 판단과 추리의 오류가 고전적 논리 체계적 합리성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며 실용적(정보처리의 효율성 위주의) 합리성에 기초한 발견법 중심의 체계라는 입장이다(Kahneman, Slovic & Tversky, 1982). 이 입장에 의하면 인간이 감정을 갖고 있기 때문에 비합리적 존재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인지적 특성의 본질 그 자체가 논리적 합리성 원칙의 체계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음은 완벽한 계산을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그러한 체계가 아니라 생태적 합리성 원리에 의하여 환경에 적합한 단순하고, 빠르고, 검약한 휴리스틱스를 생성하는 체계라는 Gigerenzer(2000) 등의 주장이 각광을 받고 있는 최근의 상황이 이 접근이 시사하는 바와 영향을 잘 나타내어준다. 이들은 인간의 판단과 결정, 그리고 추리 과정의 논리적 합리성에 대한 본질적 회의를 제기하였고, 최근에 진화심리학적 연구와 연계를 지니면서 그 논지에 무게가 더 실려지고 있다.

<진화심리학적 접근>: Cosmides & Tooby(1992) 등이 중심이 되어 제기된 진화심리학적 접근은 심리학 전반과 인지과학을 재구성하는 하나의 대안적 틀을 제공하고 있다. 진화심리학의 중심 물음은 다음과 같다(Buss, 2004): 왜 인간의 마음은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도록 설계되었는가? 인간의 마음은 어떻게 설계되었는가? 즉 마음은 무엇을 하게끔 설계되었는가? 마음의 부분 요소 또는 메커니즘은 무엇이며 어떻게 조직화되어 있고 그 기능은 무엇인가? 현재 환경에서의 입력, 특히 사회적 환경에서의 입력은 마음의 설계와 어떻게 상호작용하여 관찰 가능한 행동을 생성해 내는가? 진화심리학에서는 진화의 자연선택 과정들의 설명을 통해 마음의 진화적 특성을 밝히고, 그것이 주는 의의를 찾는다. 마음은 다른 신체적 체계와 마찬가지로 진화 단계에서 인류의 선조들이 그 당시에 당면하였던 환경에서의 중요한 정보처리 문제들을 해결하거나 어떤 특정한 기능을 수행하도록 자연선택에 의해서 조성된 것이다. 그러한 단계에서 습득된 심적 특성이 오늘날의 인간에게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사회문화적-상황적 접근; 행위로서의 마음>: 이 접근은 환경 속에서 상호작용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행위로서 마음의 작용을 설명하고자 하며, 환경이 인간의 심적 특성, 한계를 규정, 제약하고 인간의 심적 구조가 환경을 규정하고 변화시키는 그러한 상호작용의 관계 속에서의 마음을 연구하고자 한다. 따라서 외부세계와 고립된 개인 내부에서 일어나는 심적 과정과 그에 의해 의미를 지니는 표상을 마음의 본질로 보는 데카르트적 인지주의 관점과는 다른 입장을 제시한다. 즉, 세상 속에서 적응하며 활동하는 존재이며 세상의 일부로서의 한 개인이 사회적 상호작용 속에서, 그리고 물리적 환경의 자연물과 인공물과의 상호작용에서 이루어지는 담화에 의해 구성되고 의미를 지니는, 그리고 구체적인 신체에 구현된 실체로서의 인간 마음, 그리고 환경의 다른 인간의 마음이나 각종 인공물에 분산표상된 마음, 문화적, 사회적, 역사적으로 상황 지워진 마음, 행위로서의 마음(mind as activities)으로서, 그 본질로 보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의 하나인 인지생물학입장 (Varela, Thompson, & Rosch, 1991)에서는 인지의 마음의 뿌리가 인간존재의 생물학적 바탕에 뻗어있다고 본다. 따라서 생물적 삶과 심적 행위, 심적 내용이 하나로 얽혀져 있다고 보는 것이다.

다른 한 접근인 담화적 접근 (Harr?, 1993)의 관점은 다음과 같다. 인간은 능동적이고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관계와 에피소드를 구성해 나아가는 존재이다. 사회적 세계는 담화적 구성인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마음은 사회 문화적 집단에 의해 형성되고 구성되는 담화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다. 세상을 한 개인에게 의미 있게끔 하는 기술과 기법의 영역이 마음이다. 따라서 데카르트식의 마음의 개념은 버려야 한다. 마음이란 개인을 넘어서는 여러 외적 영향들이 마주치는 점이다.

한편, 상황인지(situated cognition)접근은 이러한 여러 가지 관점들이 종합되어 인간의 마음을 <상황 지워진(situated)> 관점에서 재구성하려는 접근이다(Clancy, 1993). 마음은 뇌 속에 캡슐화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환경(물리적, 사회적)과의 상호 작용 속에서 구현된다. 고로 환경으로부터 독립된 마음이란 불가능하다. 인공물, 외적표상이 일상의 문제해결에서 흔히 사용되기에 마음과 환경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 인간의 지식은 경험되는 상황 또는 일련의 범위의 상황들과 완전히 괴리되거나 탈맥락화 될 수는 없다. 마음 속의 표상에는 항상 어떤 문화적 맥락이 있다. 또한 사고란 자전거 타기와 마찬가지의 신체적 기술인 것이며, 사고 속에 지각의 기제가 포함되어 있다.

매개된 행위(mediated cognition) 접근. Vygotsky의 이론틀(Vygotsky, 1978)에 기초하는 이 접근에서는 문화사회적 상황맥락에서 인간 개인과, 매개 수단으로서의 문화적 도구가 하나의 단위를 이루어 상호 작용함에 초점을 둔다. 인간의 마음이 인류 역사적, 문화적, 제도적 맥락에 의하여 형성되었기에, 인간의 마음은 이러한 환경 맥락에서의 발달 역사를 고찰함으로써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문화적 도구(언어를 포함)와 개인을 별개의 독립적 단위로 떼어놓아서는 인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고 본다.

이상에서 언급한 <밖으로 끌어냄> 또는 <사회문화적, 상황적 재구성>을 지향하는 이러한 접근들의 개념과 이론, 그리고 실제 연구 수행의 관행들은 인지과학의 패러다임적 특성을, 그리고 개념적 기초적 생각들과 방법론들을 크게 변화시키고 있다. 사회문화적-상황적 인지 입장은 인간은 이성적이고 동물은 본능적이며, 감각적이라는 데카르트적 합리론적 관점을 허물어뜨렸다.

                                                                               (   계   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