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개념의 재구성 (2) : 21세기의 연구 동향


II.3. 계속되는 탈 데카르트적 추세: 21세기의 철학과 인지과학의 움직임들

 

2.3.1. 인지과학에서의 '마음 = 뇌' 동일시 관점의 비판

 

앞서 2.2. 절의 첫 부분에서 언급하였듯이 심리학과 인지과학에서 뇌의 중요성을 되살려 놓은 <아래로의 끌음>의 움직임은 엄격히 이야기하자면 기존의 데카르트의 존재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채 전개되고 있는 틀이다. 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마음은 다름 아닌 뇌의 신경적 상태일뿐이라는 입장의 저변에는 마음에 작용하는 외적 환경 요인의 계속된 역동적 영향이, 그리고 개별 상태의 집합이 아닌 연속적 역동으로서의 마음의 개념이 배제되어 있다. 또한 마음이 뇌의 신경적 상태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입장을 전개하였지만, 뇌가 아닌 나머지 몸의 역할에 대하여는 주의를 주지 않았다.

뇌와 마음을 동일시한다던지, 뇌는 중요하다고 인정하지만, 기타 몸이나 환경요인을 경시하는 이러한 기존의 인지과학적, 신경과학적 관점들에 대한 비판적 견해가 철학에서는 옛부터 있어왔으나, 주로 현상학적 입장의 학자들 중심으로 전개되었기에, 실험적 경험자료를 중시하는 일반 인지과학계나 신경과학계에서 주류를 이루지는 못하였었다. 그런데 지금 21세기초 이 시점에서 이러한 비판적 관점의 목소리가 철학에서, 그리고 인접학문에서 점차 커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최근의 인지 과학적 논의들은 전통적 관점인 환원주의적 심신동일론뿐만 아니라 주체-개체 이분법의 데카르트적 존재론을 벗어나려 하고 있다. 뇌 내에서 일어나는 과정으로서의 마음, 심적 경험이라는 ‘뇌 = 마음’ 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Uttal, 2001), 인간의 마음이 물리적, 사회적 환경에 확장되어 있으며('Mental phenomena emerge not merely from brain activity, but from an interacting nexus of brain, body, and world.(Rockwell, 2005)'), 환경에 신체로 체화된(embodied) 개체가 환경과 상호 작용하는 action 상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거론하고 있다 (Rockwell, 2005; Wheeler, 2005).

이러한 새 입장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J. Dewey, R. Rorty 등의 실용주의 철학자들과 하이데거 메를로-퐁티 등의 대륙의 현상학적 철학자들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표상주의와 계산주의를 추종하여온 인지과학에 反하여 이러한 대안적 관점의 타당성을 1980년대에 강하게 부르짖은 것은 H. Dreyfus나 J. Searle 같은 일부 인지과학 철학자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일반 경험주의 과학자들에 의해 심각하게 수용되거나 새로운 틀로 발전되지 못하였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체 상황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에 철학이 아닌 경험과학의 도움을 받게 되면서 부터이다.

마음과 뇌의 신경적 상태를 동일시 하고 환경적 요인을 경시하는 것에 대한 비판적 관점의 제기를 심리학에서 찾자면 W. James, K. Lewin, J. J. Gibson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위에서 언급한 내용이지만, 지각심리학자 J. J. Gibson(1979)은 유기체와 환경을 이원론적으로 구분 지을 수 없으며, 심리학은 인간 마음 내의 표상, 계산 등의 연구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유기체가 살아 움직이고 또 상호 작용하는 환경, 즉 자극세계의 생태적 본질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며, 마음은 자극들의 변화 속에 내재하는 특성(invariant properties)을 탐지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자극은 유기체에게 외부에서 마음으로 또는 뇌로 일방적으로 부과되고 표상되는 것이 아니라, 유기체의 행위에 의해 비로소 산출되고 획득되는 것이다. 마음이란 수동적으로 외부자극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유기체가 환경으로 무언가 활동을 하여, 그 결과에 따라 심적 경험 내용이 획득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한편 Thelen과 Smith(1993) 등의 발달심리학 연구자들은 어린아이가 걷기를 학습하는 행동 등을 뇌 내의 내적 표상 개념이 없이 동역학체계적(dynamic system) 틀을 적용하여 설명하는 것이 더 적절함을 보였다.

철학 밖에서 전통적인 관점을 비판한 주장이 제기된 것은 심리학 외에도 인류학, 인공지능/로보틱스, 신경과학 연구의 일부를 생각할 수 있다. 인지인류학자인 E. Hutchins는 몇 사람이 함께 협동하여 움직여 나가는 요트 항해와 같은 실제 예에서, 모든 정보가 개인의 뇌내에 표상으로 저장되어 있는 것은 아니고 환경에 분산저장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인공지능학자 R. Brooks(1991)는 그 당시 인지과학 전반을 풍미하던 접근인 내적 표상 조작 중심의 인공지능시스템 관점이 한계를 지니고 있으며, 바퀴벌레와 같이 뇌내의 정보 표상이 없는(nonrepresentation) 지능시스템이 앞으로의 로보틱스 연구가 지향하여야 할 방향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Gibson, Thelen, Hutchins, Brooks 등 학자들의 공통점은 마음이란, 특정 지식이 정형적 표상으로 뇌에 미리 내장됨 없이, 환경과 괴리되지 않은 개체가 환경에 주어진 단서구조들과의 상호작용하는 실시점의 행위에서 일어나는 비표상적 역동적 활동이라고 본 것이다.

한편 신경과학에서 R. Melzack(1993) 등은 뇌와의 연결이 단절된 척추체계가 통증 감각과 학습에서 일종의 인지적 반응을 보인다는 것과, 신경계가 아닌, 전신에 퍼져있는, 홀몬 관련 세포 수용기들이 정서반응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임으로써, 정서적, 의식적 사건이 뇌만의 사건이 아닐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마음 = 두뇌’ 식의 단순화된 생각의 문제점을 제기한 것이다. 또한 유명한 신경심리학자인 M. Farah(1994), Crusio(1997), 신경지각심리학자 Uttal(2001, 2005) 등도 마음과 뇌를 동일시하여 뇌의 심적 기능의 국재화(localzation)가 곧 마음의 속성을 밝혀주는 것처럼 생각하는 단순한 관점의 위험을 제기하였다.

그렇기는 하지만 인지과학 내의 경험과학에서의 이러한 새 관점의 논의는 인지과학적 철학이 개입하기 이전에는, 학계를 지배하고 있는 데카르트적 틀에 대한 비조직적 산발적 압력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었고, 인지과학, 신경과학, 심리학의 기반에 놓여 있는 데카르트적 존재론을 무너뜨리지 못하였다.

 

2.3.2. 철학에서의 마음 개념 재구성의 시도

 

그런데 이제 21세기 초, 현재의 시점에서 인지과학적 철학이 이러한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기 시작한 것 같다. 2.2.2. 절에서 언급한 바 있는, 인지과학의 경험과학적 연구의 새 변화들이 어떤 하나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묶이어 질 수 있는가 하는 철학적 개념적 기초 작업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마음과 뇌가 동일한 것이 아닐 수 있으며, 마음은 뇌를 넘어서, 비신경적 신체, 그리고 환경, 이 셋을 포함한 총체적인 집합체에서 일어나는 그 무엇으로 개념화하여 인지과학의 기초를 재구성하는 작업이 부활된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전에 현상학 철학자들에 의해 논의된 입장이 1980년대에 인지과학 철학자들에 의해 인지과학에서 논의되었고, 이것이 21세기에 다시 힘을 얻는 이러한 작업의 최근 시도는 논저들에서, 그리고 학술모임 등에서 드러나고 있다.

최근의 관련 저서로서는 신경과학자와 철학자가 공동작업하여, 신경과학의 철학적 개념적 기초가 박약함을 주장한 책인 Bennet & Hacker(2003)의 저서, 지각도 사고도 감각-운동적 신체적 행위에 바탕하고 있다는 철학자 Noe(2004a)의 저서, 마음은 뇌 자체도, 기계속의 도깨비도 아니다 라는 주제로 강하게 ‘마음 = 뇌’ 관점을 비판한 철학자 T. Rockwell(2005)의 저서, 뇌 속의 마음이 아니라 몸과 괴리되지 않으며 세상과 괴리되지 않은 마음으로 인지로 재개념화하여야 한다는 철학자 Wheeler(2005)의 저서, 몸 이미지가 아닌 몸 스키마의 개념을 사용하여 ‘몸이 마음을 어떻게 조형하는가’ 하는 주제를 다룬 철학자 Gallergher(2005)의 저서, 철학 밖에서, 몸을 배제한 체화되지 않은 상호작용의 개념으로는 인간간의 상호작용을 설명할 수 없다는 컴퓨터과학자 Dourish(2004)의 저서, 마음은 뇌 안에 있거나 개인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뇌를 넘어서, 개인을 넘어서 있다는 Wilson(2004)의 저서, Menary가 편집한 '연장된 마음에 관한 논문들'이라는 저서(in press) 등이 있다. 이외에 관련 논문으로는 Clark(1998, 2001, in press), Noe(2004b), Dreyfus(2006) 등의 논문이 있으며, 최근에 개최된 학술모임으로는 '확장(외연)된 마음', '확장된 인지', '상황적 인지', '체화된 인지' 등의 이름으로 2006년에 유럽에서 개최된 학술모임들이 있다.

이러한 논저나 학술모임에서 학자들은 전통적인 인지과학이나 신경과학의 주장을 넘어서서 몸과, 환경과 괴리되지 않은 행위로서의 마음의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뇌나 몸과 괴리된 계산적 마음을 논한 고전적 인지심리학의 마음 개념을 인지신경과학이 뇌 속으로 넣어주었다면, 이제는 그 뇌를 몸으로, 그리고 다시 그 몸을 환경으로 통합시키는 작업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은 뇌속에서 일어나는 신경적 상태나 과정이라고 하기보다는 신경적 기능구조인 뇌, 뇌 이외의 몸, 그리고 환경의 3자가 괴리되지 않은 총합체(nexus) 상에서 이루어지는 행위 중심으로 재개념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3.3. 21세기 초의 마음 개념 재구성의 시사

 

자연과학적 인지과학과 인문학의 철학을 연결하여 새로운 틀을 이루어 내려는 이러한 작업은, 일찍이 지난 20세기 초에, 마음의 문제를 협소한 주관적 차원에 국한하지 않고 개념화한 고전적 실용주의철학자 들의 계승이라고도 볼 수 있으며, 주체와 객체가 괴리되지 않은 세상속의 존재로서의 인간의 일상적 인지를 강조한 M. Heidegger적 재구성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심하게 말하자면 ‘데카르트적 틀의 관에 하이데거적 못을 박는 작업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Wheeler, 2005)’.

서구에서는 기독교 전통에 따라 몸과 마음을 이분법적으로 보는 전통을 계승하여 왔다. 이러한 전통은 근대 이성의 획을 그은 데카르트에게도 살아 있어서 그는 몸과 마음을 이분법적으로 보았다. 몸은 동물적 기계로 보고, 마음, 영혼은 그것을 넘어서는 무엇으로 보았다. 이러한 데카르트의 2원론적 입장에 대하여 비판적이고 수정론적인 입장이 있었으나, 2원론적 입장은 그 이후 그대로 유지되어 왔다. 20세기 후반에 떠오른 인지과학, 신경과학에서의 관점은 데카르트의 이원론을 수정하여  마음과 몸을 하나로 보고 신경적 상태로 마음을 설명하려는 일원론적 관점을 제시하고 유지하여 왔다. 그러나 전통적 인지주의는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하드웨어의 중요성을 격하시켜 뇌의 탐구를 소홀이 하였다. 한편 그와는 차별적으로, 심신동일론적 일원론 관점에 서있다고 볼 수 있는 80년대 이후의 연결주의나 90년대 이후의 신경과학도 근본적으로는 현상을 경험하는 주체와 그 대상인 객체를 이분법적으로 보는 데카르트의 존재론적 관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마음을 뇌의 신경적 상태로 환원시킬 수 있다고 본 그들의 환원주의적 관점은 데카르트의 이원론적 개념 틀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하겠다. 마음과 몸의 연결을 단순히 몸의, 뇌의 신경적 상태로 환원하는 단순적 시도 이외에는 마음과 몸의 관계에 대한 본질적 측면에 대한 어떤 시사를 주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환원주의적 설명이, 오래된 서구 사상의 이원론적 생각을 넘어서서, 나 자신의 물음, “내 몸은 나에게 과연 무엇인가? 몸은 내 마음에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가?” 하는 물음과 관련하여 심신이원론과 환원주의적 일원론을 넘어서서 인지과학의 ‘제3의 흐름(the Third Movement), '확장된 마음(Extended Mind)', '체화된 마음(Embodied Mind)' 등의 이름으로 불리며 많은 토론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새 흐름은 마치 70년대의 '표상(representation)'에 대한 활발한 논의나, 80년대 초의 '단원성(modularity)' 논의, 80년대 후반의 '연결주의(connectionism)' 논의처럼, 현재 인지과학에서, 철학에서, 그리고 그와 연결된 인지과학의 다른 학문들에서 활발하게 논의되는 주제로 떠오르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흐름이 21세기 초의 심리학, 인지과학, 신경과학, 인공지능 및 로보틱스, 그리고 주변 사회과학에 어떠한 형태로던 이론적으로, 그리고 구체적 응용 practice의 형태에 영향을 주리라고 본다.

인간의 고차적인 마음, 심리과정, 인지과정은 환경과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비로소, 그에 바탕하여서 가능하여지는 것이고, 그러한 환경과의 상호작용능력은 몸과 마음이 하나인 '체화(육화)된 마음'이 환경과 (감각운동적으로) 엮어져들어감으로써(engagement)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몸을 떠난, 몸과 괴리된, 몸에 바탕하지 않은 마음이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며, 몸과 괴리된 마음의 내용이란 근거가 없는 것이다. 또한 환경과는 독립적으로 따로 존재하는 마음이란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머리, 두뇌 속에 미리 데이터로 들어있고 작용과정으로 들어있고 그냥 나오기만 하면 되는 그러한 마음이 아니라. 과거에 몸과 마음이 하나로 작동하는 체화된마음이라는 단일체로서 환경자극과 엮어져들어간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 현 시점에서 다시 환경자극과 몸이 역동적으로 다시 엮어져들어갈 때에 그 때에 비로소 내 마음, 내 마음의 내용이 활동으로서의 마음이 존재하는 것이다. 내 몸 따로, 내 마음 따로, 내 환경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철학자들의 추상적, 개념적 주장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니라 경험적 연구를 하는 심리학자들의 실험 연구와 자신의 이론적 모델 전개에서도 그런 관점을 반영한 이론과 모델들로 나타나고 있다. 이미 90년대 초반부터 발달심리학을 중심으로 전개되어온 동역학체계적 접근은 (Kelso, 1995; Port & van Gelder, 1995; Thelen &Smith, 1994) 감각운동에 바탕한 심적 행위의 비선형 변화 모형을 중심으로 하여 기존의 인지과학적, 신경과학적 접근의 대안을 제시하여 왔다. 이러한 심리학적 연구와 철학의 확장-체화된 마음 개념이 연결되는 최근의 심리학적 연구의 예를 들자면, Spivey(2005, 2006)의 시각 및 언어에 대한 연구나 Zwaan 등의 언어 연구 (Zwaan & Madden, 2005;, Zwaan & Taylor, 2006)의 연구를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연구들에서 공통적으로 제기되는 주제는 마음이란 뇌가 환경 자극을 개별적 (discrete) 상징(기호)로서, 비연속적 신경상태로 표상하는 것이 아니라, 몸과 환경의 자극과, 지각, 운동, 인지, 행위가 하나의 통합적 바탕에서 엮어져 전개되는 연속적 역동적 활동으로서 개념화되는 것이다. 확장된 마음, 체화된 마음의 핵심 개념을 1970년대에 경험과학에서 전개한 사람이 다름 아닌 유명한 생태(지각)심리학자 James J. Gibson 이었음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심리학자들의 연구 접근의 변화는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II.4. 마음 개념 재구성과 환경자극의 역할

 

마음 개념의 재구성에 대한 이상의 논의는 전통적 입장과는 다른 관점에서 마음의 개념을 재구성하여야 할 필요성들을 제시하고 있다. 환경과 독립된 채, 뇌 속에 자리잡은 추상적 표상체계로서의, 상징표상의 조작 정보처리로서 만의 마음이라는 데카르트 전통의 고전적 인지주의가 마음에 대한 충분한, 적절한 설명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님이 드러났고, 뇌 속에 존재하는 괴리된 실체로서의 마음을 벗어나서 밖으로의 재 개념화가 이루어져야 함이, 그리고 환경자극의 연속적이고 역동적인 역할에 눈을 돌려야 함이 분명해진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마음 개념의 재구성 작업에 의하면, 마음은 뇌 속에 캡슐화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물리적 혹은 사회적 환경과의 상호 작용의 역동선 상에서 자연환경을 비롯하여 인공물 환경에 확장, 분산되어진 마음이다. 이러한 마음에서는 많은 내용을 기억 속에 명시적으로 표상하지 않으며, 암묵적 상태로 환경에 내재화하게 내버려둔다. 분산된 표상, 확장된 인지의 특성이 강한 것이다. 따라서 환경자극의 주 역할은 표상의 지표적 저장 및 재구성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상황이 주어지면 이러한 환경자극 맥락 단서에 근거하여 최대한으로 즉석에서 변통하여 내는(ad lib) 전략을 활용하는 체계인 것이다. 세상을 지나치게 정적 구조로 표상화하고 모형화하여 저장하는 것을 피하고, 실시간의 감각운동-행동-산출 체계의 요구에 맞도록 세상에 대한 모형화를 시도하며, 어떤 특정한 체계(동물이건, 사람이건, 로봇이건)의 요구나 생활양식과 그 체계들이 반응해야 하는 정보를 포함한(information bearing) 환경 구조의 적합한 짝을 찾아내는 것에 초점이 주어진 체계이다. 심적 계산 과정이 외적으로 시공간에 확산/확장되어 있고, 사고가 환경에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행동, 활동과 괴리된 내적 표상이 아니라, 무슨 활동을 내어놓아야 할지를 가리키는 지표로서의 단서적 표상이 외적 환경에 심어져 주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활동과 환경적 단서가 밀접히 연결되는 것이다. 인공물과 같은 매개적 도구와 이와 상호작용하는 매개적 행위는 사회문화적으로 상황지워진 것이며, 매개적 수단(도구)은 그 나름대로 ‘사용가능성의 제공(affordance)’과 제약(constraints)을 지니고 있다. Vygotsky 등의 입장을 따르자면, 상황적 행위자와 매개적 도구와의 관계는 행위자가 그 도구를 어떻게 사용하는가를 알게 되는 '행위로서 습득하는(knowing how)‘ 과정과, 그와 더불어 도구 사용의 사회적 속성을 '제 것으로 삼기(appropriation)' 과정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환경자극과 마음이 별개인 것이 아닌 것이다.

 

II.5. 마음 개념 재구성과 인공물

 

마음의 개념을 몸을 넘어서 환경으로 확장하고 또한 환경자극의 역할 개념을 위와 같이 제개념화한다면, 인간의 몸과 마음을 둘러싸고 항상 영향을 주고 있는 환경자극의 대부분인 온갖 인공물(컴퓨터와 같은 하드 인공물과 언어, 경제체제와 같은 소프트 인공물)과 마음과의 관계를 재정립하여야 할 것이다.

인간이라는 종의 진화는 순수한 신체적 진화, 마음의 진화의 역사라고 하기 보다는 인간의 마음과 몸이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물과 공진화의 역사라고 볼 수 있다. 단순히 인간이 인공물을 만들고 활용한다는 일방향적인 활동에 의하여 인간의 진화가 이루어졌기보다는, 인공물이 인간의 신체적, 심리적 활동을 확장시키고 또 제약하기도 하는 쌍방향적 상호작용 과정으로 진행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인공물과 인간 마음이 오랜 세월에 걸쳐 공진화하였다면, 그 과정에서 인간의 마음속의 어떤 내적 표상 구조, 특히 외부 세계와 자신의 문제 상황간의 관계에 대한 가설적 구성개념들이 외현화되고 물리적 환경에 구현되어 인공물이 도구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외현화 및 구현 과정 속에서 인간의 뇌와 마음, 특히 인지는 끊임없이 외부 세계의 역동적 변화와 상호작용하며 외부세계와 인간의 마음, 그리고 그것을 연결해주는 표상체계를 재구성 내지 창안해가며 변화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 마음의 진화란, 인간 마음속의 생각을 외현화하여 인공물에 구현하고, 인공물을 활용하는 활동을 통하여 다시 그 도구의 어떤 특성이 마음속으로 내재화되고, 그 결과로 그 인공물에 대한 개념이 변화하고, 이것이 다시 외현화되어 인공물을 변화시키고, 이것이 다시 마음으로 피드백되고 하는 마음과 인공물을 오가는 끊임없는 <되돌이 고리>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되돌이 고리는 21세기인 지금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미래 디지털 세상에서도 - 그치지 않고 되풀이될 것이며 그를 통하여 우리의 심적 능력과 특성의 변화, 삶의 변화가 초래될 수 있다. 인간의 삶을 인공물과의 상호작용을 빼놓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따라서 인간의 마음의 작용의 본질을 탐구하고 이해하는 데에서 인공물과 인간, 특히 인간의 마음과의 관계에 대한 적절한 개념화가 필요하다

그런데 1990년대 전반까지의 인간-인공물 상호작용의 연구는 전통적인 데카르트적 인식론에 기초한 이론에서 벗어나지 못했었다. 인간의 마음은 환경과는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독자적인 표상을 지닌다는 것이 데카르트적 인식론의, 그리고 전통적인 심리학의, 인지심리학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입장에 바탕하여, 표상화된 개별(discrete) 지식의 전달과 이를 표상으로 수용하는 것으로 인지적 활동과 인간-인공물 상호작용을 개념화했던 전통적 심리학, 인지과학의 관점은 ‘인공물에 의하여 매개된 인간-인간 상호작용’의 일부 현상을 설명할 수 있으나, 역동적인 인간-인공물 상호작용, 특히 사이버 공간에서의 역동적인 심리적 현상을 설명하기에는 부적절하다. 전통적인 마음 관점은 환경과 마음의 상호작용의 본질에 대한 부족한 내지는 잘못된 개념화를 제시함으로써 인간 심적 특성에 부합되지 않은 인공물 환경을 생산하고 활용하게 하였으며, 그러한 인공물의 사용성(usability)의 빈약으로 인해 인공물 사용자에게 불편을 초래하였고, 인공물의 제작 목적이 왜곡되거나 극히 일부분만 활용되게 하였다. 이로 인하여 인간의 마음과 인공물의 상호작용은 부조화를 일으키고, 어떤 면에서는 진화의 방향과는 어긋나는 방향으로 심적 적응이 전개되게끔 하였다. 인간의 마음이 뇌 속에 갇힌 인지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활동 과정상에서, 역동적 시간 궤적 상에서 나타나는 것인데(예, 동역학심리학의 입장), 이러한 상호작용적 활동성을 무시하고 정적인 상징표상의 저장으로서의 마음으로 개념화함으로써, 인지활동의 상황의존성, 맥락의존성, 사회문화요인에 의한 결정성 등이 무시되었고, 실제 장면에서 여러 가지 문제를 유발하는 인공물을 디자인하게 하였다. 즉 인간과 환경의 인공물간의 변증법적 통일성(dialectic unity in activity) 측면을 파악하지도, 살리지도 못하였다.

그러나 이제 2.3. 절에서 제시된 마음의 새로운 개념, 즉 뇌와 몸과 환경이 하나로 엮어진 통합체에서의 능동적 활동으로 재구성된 마음 개념 틀을 도입한다면, 인공물이, 그리고 이들이 구성하는 현실공간이나 사이버공간이 '확장된 마음', '확장된 인지'로서, 그리고 마음의 특성을 형성, 조성하는 기능 단위 또는 공간, 대상 및 사건으로서 작용하며, 마음과 인공물이 하나의 통합적 단위를 형성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마음과 인공물의 관계를 재구성한다면, 인간의 마음의 작동 특성이 본질의 심리학적, 인지과학적 탐구는 물론, 인간의 각종의 적응, 부적응의 이해와 이의 변화의 각종 응용심리학적 practice들, 그리고 각종 인공물(하드웨어적 및 각종 문화제도 등을 포함한 소프트웨어적 인공물)의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 및 활용에 대한 새로운 좋은 틀을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이다.

 

II-6. 마음 개념 재구성의 시사

 

그러면 이러한 마음 개념의 재구성이 심리학에서 심적 과정을 연구하는 데에 구체적으로 어떠한 시사를 줄 수 있을 것인가? 외적 자극에 대한 정보가 개별적인 비연속적인 신경상태로 뇌 속에 저장된 것으로 개념화하던 입장을 넘어서, 몸의 중요성, 물리적 및 사회문화적 환경의 중요성, 그리고 이 연결선상에서 일어나는 역동적인 활동으로서의 마음을 강조하는 것은 철학에서 현상학적 접근의 바탕 위에 서 있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자연히, 전통적인 실험심리학, 또는 인지심리학보다는 실존적, 인본적 틀에 더 기울어져서, 몸과 생명을 지니고 활동하는 개체의 역동적 측면에 더 관심을 가지고 진행되어 온 임상심리학, 상담심리학, 건강심리학의 틀에게는 이전의 인지심리학이나 행동주의심리학의 틀보다는 더 친화적인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임상-상담-건강심리 분야의 철학적, 개념적 기초를 잘 모르는 본 저자로서는 이러한 마음 개념 재구성이 이들 분야에 대하여 시사하는 바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더 자세하게 논할 능력을 지니고 있지 않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마음 개념의 재구성이 심리학 일반에 주는 시사에 대하여 짧막히 언급을 하고, 인지과정 특히 학습, 기억, 언어의 심적 과정 개념화 및 연구에 주는 시사를 조금 더 자세히 논의하여 보기로 한다.

<마음 개념 재구성과 심리 일반>: 위의 논의들은 인지과정에서 인간이 어떻게 감각-운동 행위를 통하여 외적 환경과 연결되고 사회적 맥락적 의미 부여를 이루어내는가에 대한 시사를 제시하였다. 이와 유사한 시사를 다른 인지과정은 물론 심리 현상 일반에 대하여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발달심리에 대한 시사가 크며, 학습심리, 이상심리, 성격 및 사회심리, 정서 및 동기심리, 그 외의 디자인심리, 소비자심리 등에서의 마음에 대한 재개념화 및 적절한 응용 practice의 도출에 어떤 시사를 주리라 본다. 물론 임상, 상담 등의 심리학의 응용 분야에서는 이러한 마음 개념 틀 재구성이 최근에 철학과 인지과학에서 주어지기 훨씬 이전에 이미 인본주의, 실존주의 등에 바탕하여, 사람 개개인을 몸을 지닌, 구체적 환경과 괴리될 수 없는 개인으로서 개념화하고 내담자나 심리적 문제가 있는 개인들의 심적 현상에 대한 이해와 설명을 도출하고 효율적인 응용 기법을 도출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마음 개념 재구성 틀을 일반심리학으로 확장함에 있어서 두드러질 경향은, 유아와 아동의 감각-운동 행위 및 사회적 행위의 내재화 및 분산표상 측면에 강조가 주어질 것이며, 그리고 이러한 측면이 보강된 마음이론(theory of mind), 그리고 단절된 시점에서의 의미를 넘어서 연결된 시간 계열 상에서의 의미의 구성 과정 특성과 변화 특성 등의 측면과 비언어적 의사소통 체계 측면 등이 강조되리라 본다. 이러한 변화 추세에서는 비고츠키와 같은 사회문화적 발달 관점이 그 중요성이 점증하리라 본다. 또한 마음 개념의 이러한 재구성이 현상학적 철학에 바탕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동안 심리학의 주류로부터 제3세력 등의 이름으로 불리어지며 심리학의 주변으로 밀려나는 압력을 받아온 인본주의적, 실존주의적 심리학 관점이 소위 과학적 심리학이라고 불리는 전통적 심리학에 보다 가깝게 연결되고 이론적으로 더 발전하여 나름대로의 실험심리에 바탕한 전통적 심리학에 보다 적극적인 이론적, 개념적 보완 틀을 제공할 수도 있으리라 본다.,

<마음 개념 재구성과 학습>: 새로운 마음 개념의 관점이 인지과정 중, 학습, 특히 인지학습 과정의 탐구에 시사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고 추론할 수 있다. 행동주의 심리학에서의 학습은 자극과 반응 연결 행동의 학습이었고, 정보처리 인지주의심리학에서의 인간의 학습은 정보처리체인 인간의 추상적, 언어화된 지식의 습득, 저장, 인출, 활용에 초점을 두었다. 환경과 신체와 행동과 연계되지 않은 채 정보처리 체계인 마음에 별개로 내장되는 측면과, 이러한 지식들의 연합적, 또는 논리적 의미구조적 측면에 강조를 두었다. 인지신경심리학적 접근에서는 이러한 추상화된 지식의 습득을 이루어내는 정보처리적 과정의 신경적 기초를 밝히는데 초점을 두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마음 개념의 틀에서는 몸과 환경과 마음이 연결되는 측면에 초점을 두기에, 환경과 괴리된, 몸을 통한 행위와 괴리된, 추상적 명시적 지식의 습득과 저장으로서의 학습이 아니라, 구체적 상황적(situated) 학습, 복합적 현실적 유관 상황에 신체를 가지고 적응하는 행위로서의 학습과 그러한 절차적 행위로서의 암묵적 지식, 그리고 환경 단서와의 연결 측면이 강조된다고 할 수 있다. 환경과 동떨어진 그러한 추상화된 지식이 아니라, 구체적 상황 상황에서 어떻게 적응행위를 내는가, 환경과 의미있게 관계짓는, 그리고 실시간적으로 변화하는 그러한 행위 학습이 강조되게 된다. 마음 개념의 이러한 재구성은 그동안 인지심리학의 주류와는 비교적 독립적으로 비고츠키 등의 이론을 빌어 전개되었던 교육심리학, 등의 ‘Learning by doing'의 개념이나, 상황적 적용과는 거리가 있는 ’추상적 지식‘ 이 아닌 “산 지식”의 개념이 심리학의 비주류적 개념이 아니라 바로 심리학의 주류 개념으로 재등장하고 이론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마음 개념 재구성과 기억>: 전통적 인지주의에서 개념화한 기억이란 환경적 자극을 언어적 형태의 정보로 추상화한 표상, 즉 유기체가 환경과의 연결과정에서 이루어내는 행위와는 괴리된 형태로 저장되는 표상에 초점이 주어졌다. 그러나 새로 재구성된 마음 개념 틀에서는, 개인의 일화적 신체적 경험 행위와 동떨어진 추상적 기억, 감각운동 경험과 동떨어진 추상적 언어적, 개념적 기억 등이 그 현실성 바탕이 무너진다. 추상화된 정보로서의 기억이 아니라, 환경과 괴리되지 않은 채, 몸을 통하여 행위를 내는 개인이 세상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환경상황 맥락의 단서들이 행위지식과 연결된 형태로 부호화되고, 정교화되며, 또 저장주소 중심적 기억이 아니라, 상황내용 중심적 기억의 형태로 기억되는 것이 중요하게 된다. 환경맥락과의 연결정보, 감각-신체운동적 경험과의 연결성, 신체적 반응을 포함한 정서적 경험과의 연결성 등이 강조될 수 있다. F. C. Bartlett경의 문화맥락적 구성 및 재구성으로서의 기억 개념, E. Tulving의 부호화 특수성 가설이 새로운 틀에서 개념화되고, 암묵적-명시적(implicit-explicit) 기억 구분의 접근이 감각-운동-정서적 바탕의 암묵적 측면에 더 강조점이 주어져 재개념화될 수 있을 것이다. 자극 입력 시의 부호화 과정, 기억 인출과정, 기억 오류의 이해 등의 연구에서 신체적 감각-운동, 행위, 정서, 사회적 맥락 등의 측면이, 그리고 체험적 일화 내러티브 측면이 더 강조되는 연구 시도가 이루어지리라 본다.

<마음 개념 재구성과 언어>: Zwaan과 Taylor(2006)는 사람이나 대상의 움직임을 기술하는 내용의 언어 정보가 입력되면, 뇌에서 실제 움직임 시각에 관여하는 뇌의 부위가 실제 상황과 마찬가지로 활성화 된다는 것을 여러 실험을 통하여 보여주었다. 특정 움직임을 지칭하는 단어에 의하여 활성화되는 뇌의 영역과, 실제 그러한 운동을 할 때에 활성화되는 뇌의 영역이 같으며, 글을 읽거나 들으며 손을 움직이게 하였을 때에, 자신의 손의 움직임 또는 관찰된 다른 사람이나 대상의 움직임이 언어 정보에서 기술된 움직임의 내용과 일치할 때에 언어이해 반응이나 손 움직임의 반응이 더 빠름도 보였다. 언어자극의 이해란 전통적인 언어학이나 인지심리학적 접근에서 생각하였던 바와 같은 ‘감각운동경험과는 독립적인 추상적인 표상(abstract and amodal representation)'을 활성화시키는 그러한 과정이 아니라 감각지각적, 신체운동적 경험의 흔적을 활성화시키는 것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는 것이다. 즉 언어이해 과정에서 감각운동 공명(sensory-motor resonance) 과정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 결과들은 언어를 비롯한 인지과정이 몸과 격리된 뇌 안의 신경과정만 이라든가, 구체적 감각운동 신체적 경험과 괴리된 추상적이고 기호적 표상을 다루는 그러한 탈맥락적 과정이 아니라, 환경과 괴리되지 않고 체화된 인지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 계 속)